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정치국원)을 신임 외교부장으로 임명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국가 주석 겸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를 포함한 7인으로 구성된 상무위원회가 중국 최고 권력 기구이자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그 아래 중앙정치국이 있다. 중앙정치국은 25인(상무위원 포함)으로 구성돼 있다. 왕 신임 부장은 중국 공산당 당원 9700만명(추정)을 이끄는 25인 중 한 명이며, 중국 권력 서열 상 24위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왕 신임 부장은 지난해 10월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양제츠 정치국 위원(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후임으로 선임, 외교부장직에서 물러났다. 영전한 셈이다. 그런 그가 7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겸직이긴 하지만 10년간 수행해 온 외교부장직을 다시 맡은 셈이다.
중국 정치 현대사에서 고위직이 하위직을 겸하는 경우는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예컨대 지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중국 지도부는 초기 대응 실패의 책임을 물어 장원캉 위생부장을 해임하고, 그 후임으로 부총리인 우이를 위생부장에 임명한 바 있다.
지난 2012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가 낙마한 후 장더장 부총리가 충칭시 당서기를 겸임했다. 2012년은 시 주석이 집권한 해다. 시 주석과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 간 권력 암투가 있었던 때다. 결과적으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위기 때 상위 직급이 하위 직급을 겸하는 인사를 단행, 소방수 역할을 맡겼다.
세간의 관심사는 친강 전 외교부장의 낙마 배경이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왕이 정치국 위원의 하위직 재임명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친 전 외교부장의 해임 배경보다 왕이 귀환으로 중국 지도부의 외교 노선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관심이다.
과거 사례에 비추어 중국 지도부는 미·중 갈등의 상황이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미·중 갈등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 6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이후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존 케리 미 기후변화 특사가 중국을 찾았다. 급기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100세의 노구를 중국을 방문, 시 주석과 회담했다. 미·중 양국이 물밑에서 교집합을 찾기 위해 노력(?) 내지는 합의점을 찾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에 새로운 인물을 외교부장에 앉히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굵직한 외교행사도 새로운 인물이 맡기 쉽지 않다는 점도 재임명 배경으로 꼽힌다. 중국은 청두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항저우 아시안 게임, G20 정상회의,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 포럼 등 올 하반기 큰 외교행사를 앞두고 있다. 또 오는 11월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 주석이 참석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 관계와 국제 외교행사를 앞두고 있어 10년간 시 주석과 손발을 맞춘 왕 부장이 적임자라는 판단을 중국 지도부가 했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중국 내부에선 왕 정치국원이 내년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때까지 외교부장을 겸직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실 최대 관심사는 중국 당국의 외교노선 변화 여부다. 친 전 외교부장과 달리 왕 정치국원은 노력한 외교 전문가다. 좀처럼 외교적 언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외모에서 나오는 무게감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로선 중국 외교노선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미·중 모두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국이 모종의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외교가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미·중 양국 변화는 한국과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왕 정치국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라고 전했다.